동화 속 악역영애는 속죄에 바쁘다/2장: 늑대는 빨간 두건을 쓴다

2장 2화: 반년만의 재회(2)

そうてん 2023. 5. 1. 05:20


사건이 일단락된 그날 이후로 우리 둘의 미래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어.
 어디로 데이트하러 가면 좋을지, 무슨 대화를 할지 같은.
 그럴게 우리는 서로를 잘 모르잖아? 그래서 우리의 사랑을 더 돈독하게 하기 위해, 서로를 알아가기 위해 사랑하는 네가 가고 싶은 곳이나 내가 가고 싶은 곳을 여행이라도 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후훗. 너한테 온 연락은 일절 없었고. 뭐, 쑥스러워서 연락을 안 한 건가 했어. 갑자기 이 나랑 그런 관계가 됐으니 네 가슴은 설렘에 벅찼을테니까 차분해졌을 쯤 네 쪽에서 먼저 와줄거라 믿고 난 기다리고 있었어. 하지만 넌 나타나지 않았지. 하루가 지나도 사흘이 지나도 네 모습은 보이지 않았어. 어라, 이상하다 싶었는데 아직 진정되지 않은 거 같아서 기다렸더니 무려 반년 씩이나 지나서, 어라? 이 쯤 되면 정말 뭔가 이상한데? 라고 생각이 들어서 경찰한테 수색을 맡기려 했는데 할아범이 말리더라고. 그런 곳에 세금을 낭비하면 안된다면서. 그럼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한 나흘 전에 사랑스러운 네가 가족끼리 화목하게 가게를 구경하고 있는 걸 발견한 가정부 분이 있었지 뭐야. 진심으로 마음이 놓였어. 딱히 아파서 입원해 있는 것도 아니고 너는 건강 그 자체에 가족들과 사이좋게 쇼핑 중. 내게 줄 선물이라도 사던 참이었니? 큭큭. 그래서 앞으로는 네가 상점가에 올 때는 너를 다 같이서 관찰하기로 한거야. 그야 사랑하는 사람이 상점가엔 뭐하러 온 건지 궁금하잖아? 그랬더니 뭐어? 무슨 일이 있었다고? 내 수행원 분이 말을 안 걸었더라면 넌 이 중심가에서 유명한 로리콘 노인네한테 몹쓸짓을 강요 당하고 있었을걸?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는 상황이 오는 것 쯤은, 아아, 너 정도 나이면 잘 몰랐겠지. 그것도 너는 께름칙한 건 하나도 알지 못하도록 보호받으며 살아온 고고하고 자존심 센 귀족이라 더 그렇겠다. 그래도 애들은 보통 그 정도는 알고 있거든. 그렇게 교육을 받고 있으니까. 모르는 사람은 따라가면 안된다. 알겠지, 사랑하는 허니. 똑똑히 기억해둬. 각설하고 사랑하는 그대여,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 작위적인 누더기 옷은 귀여운 네겐 어울리지 않아. 그렇게 사용인으로 일하고 싶으면,

「고용해서 내 전속 메이드로 써줄게」
「누가 한댔냐」

 홍차를 눈앞에 두고 맞은편에 있는 상대를 노려봤다.

「용케도 그딴 쓰잘데기 없는 말이 술술 나오는군」

 사랑스러운 너는 무슨. 허니는 개뿔.

「음흉한 자식」

 홍차를 마시고 있는――자칭 내 약혼자 되시는 키드는 반년 전과 다름없이 가식 웃음을 지었다.

「쓸데없는 잡담이 아니야. 구애의 말이야. 나는 테리에게 매달리고 있는 거야」
「너 이런 꼬맹이한테 치근대고 있으려니 서글퍼지지 않아?」
「숙녀 상대로 세상에 그런 녀석이 어딨니? 나는 눈앞의 사랑하는 사람에게 구애해서 대만족인걸」

(…웃기고 자빠졌네…)

 홍차에 손을 뻗자 그 위에 키드의 손이 포개졌다.

「테리, 내 사랑스러운 그대」

 어두운 축의 벽안이 날 올곧게 바라보고 있었다.

「보고 싶었어. 더는 이 손 놓지 않을게」
「꼴깝은」

 바로 손을 떨어뜨리고 홍차를 마셨다.

(어머, …나쁘지 않네)

 산뜻한 단맛이 나는 홍차.

(…홍차한테는 죄가 없지)

 죄를 지은 것은 눈앞에 있는 이 녀석이다.

(키드)

 완전 정체불명의 소년. 발이 넓은 동네 꼬마 타입. 하여간 나쁜 인상 밖에 떠오르지 않아. 이 녀석만 엮었다 하면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 스트레스만 쌓이지. 그런데도 덜컥 맺어버린 계약.

 내 보디가드가 되는 대신,

 ―――내 미래의 신부가 되겠다는 약속을 해주겠나?

(켁)

 나는 홍차를 받침 접시 위에 돌려 놓았다.

「그래서 뭔데? 나한테 무슨 용건이야?」
「테리도 참, 짖궂기도 하지」

 키드는 싱글벙글 웃으며 나를 바라봤다.

「너랑 만날 일이라고는 하나 밖에 없잖아」

 키드의 푸른 눈이 나만을 응시했다.

「같이 사랑이라는 이름의 마음을 키우고 싶을 뿐」
「집에 갈래」
「후훗. 아직 어린 테리에게는 일렀으려나?」
「맞아. 너무 빨라. 난 아직 자그마한 테리 어린이야. 사랑이니 뭐니 그딴 건 잘 모르겠는걸. 이제 가볼게」
「아이~, 또 그런 식으로 삐치기는~」

 키드가 아첨하는 목소리로 중얼대더니 하아, 한숨을 내뱉고 눈을 내리깔았다.

「아아, 대체 뭐가 문제지…? 내가 이렇게 애정을 가지고 애쓰는데」
「어디가 애정이니. 네 애정이란 건 사탕발린 말 뿐이야. 하나하나가 뜬 구름 잡는 말이라고. 망망대해 그 자체야. 위를 올려다봐. 천장에 둥둥 떠다니니까」
「위 말고 옆을 봐줄래. 내가 너한테 말을 던진 만큼 빼앗긴 쪽은 울고 있는걸」

 키드가 창문을 손으로 가리켰다. 나는 창문을 봤다. 창문으로 몇 명의 숙녀들이 들여다 보며 겨울 하늘 아래 얄밉다는 듯이 나를 노려본 채 손수건을 깨물고 있었다. 내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레이디들이 한목소리를 냈다.

「키드!」
「아아! 내 키드가 또 이상한 여자애한테 눈길 주고 있어!」
「어린 주제에 뭐야! 저 계집애! 건방져!」
「아, 봐봐! 우리 쪽 째려본다!」
「상스러!」

(닥쳐! 내가 언제 그랬냐! 원래 눈매가 이렇거든!)

 키드가 웃으며 창문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숙녀들이 히죽히죽 키드에게 손을 흔들었다.
 나는 일어서서 창문까지 걸어갔다. 창문을 열었다. 숙녀들이 나를 노려봤다. 나는 연민의 눈길을 숙녀들에게 보냈다.

「…언니들 그런 데 있느라 춥지 않아…?」
「조금」

 숙녀 중 하나가 버텨 서있는 그대로 나를 올려다본다.

「너, 이름은?」

(내가 왜 모르는 여자들한테 이름을 까발려야 하지?)

 잠자코 있었는데 숙녀들의 눈총을 받았다.

「뭐니. 자기 이름 하나 제대로 못 말해?」
「키드, 이런 애는 내버려두고 우리랑 놀자」

 키드가 유쾌하게 피식 웃었다. 그 반응에 욱해서 눈가가 꿈틀했다.

(쪼갤 때가 아니잖아! 네가 수습하라고!)

 나는 웃으며 키드를 가리켰다.

「아이 참, 같이 놀거면 얼마든지 그렇게 해요. 데려가세요. 난 이제 집에 갈거라서. 언니들, 저 오빠를 원하시면 냉큼 데려가요. 차라리 데려가줘. 제 앞에서 치워주세요. 나 저딴 건 알 바 아니니까 넘겨드리죠」
「잠깐! 저딴 거라면 혹시 키드 말하는 거야!?」

 숙녀들이 펄쩍 뛰었다.

「뭔 친한 척이야! 너, 키드랑 뭔 사이야!」
「키드! 어서 밖에 놀러가자!」
「그래. 키드! 굳이 이런 작은 애 상대 할 필요 있니, 우리가 있잖아!」
「키드…!」
「미안해, 다들」

 키드가 일어선 뒤 창문으로 걸어왔다. 그리고 내 어깨를 잡고 본인 쪽으로 끌어당겼다.

「난 만나고 말았어. 이 아이 말고는 없어」

 키드의 눈이 촉촉해졌다.

「이 아이가 내 운명의 사람이야」

 슥녀들이 애틋한 키드의 시선에 넋을 잃었다.

「다들, 응원해주겠니…?」
「「「「「그렇고 말고요!!!!」」」」」

 방금까지만 해도 우거지상이었던 숙녀들이 키드를 마주한 순간 소녀의 얼굴로 변했다.

「키드가 결정한 아이니까 틀림없어!」
「키드, 힘내!」
「아아, 키드…! 멋있어…!」
「키드! 걔한테 무슨 일이라도 당하면 내가 상담해줄게!」
「아니! 내가 할게!」
「아니, 나거든!」
「거참 말 많네! 키드 상담해줄 사람은 나 밖에 없다니까!」
「너 뭔데!」
「그러는 너는!」
「다들 고마워」

 키드가 미소를 지었다. 다투기 시작한 숙녀들이 다시 키드에게 넋을 잃었다.

「나, 행복하기도 하지. 너희같은 마음 따뜻한 친구들이 있어서」

 키드가 아름답게 웃었다.

「너희가 정말 좋아」
「「「「「우리도 정말 좋아해!! 키드!!」」」」」

 소녀들이 눈에 하트를 띄웠다. 키드는 여전히 방긋방긋 웃고 있었다.

「그럼 나 이따 얘랑 이런저런 얘기를 해야 되거든」
「키드! 얘기 끝나면 연락해!」
「키드! 나한테 해! 기다릴게!」
「키드! 나도 기다릴게!」
「키드, 뭣하면 나 다시 올게!」
「키드, 이 다음에 시간있어?」
「유감스럽게도 오늘은 더 이상 시간을 못 내겠네」

 그래도 너희들은 소중히 여기고 있어.

「오늘은 그만 돌아가줄래? 너희가 감기라도 걸리면 나 마음 아파서 울 거 같아」
「「「「「네에에에에에!!」」」」」

 우렁차게 대답하고 숙녀들은 담박하게 돌아갔다. 숙녀들이 손을 흔들었다. 키드가 손을 흔들었다. 그 모습에 정신이 팔려 모두 나무에 부딪혀 넘어졌다. 키드가 내 옆에서 창가에 손을 올리고 다른 손으로 창문을 닫았다.

「아, 춥다 추워」

 커튼을 쳤다.

「봤지, 다들 나한테 홀딱 빠져있어. 넌 언제쯤 나한테 푹 빠지려나?」
「이제 갈게」

(나한텐 시간이 없다고)

 뒤돌았더나 키드의 가슴이 시야에 비쳤다.

(엇)

 하마터면 부딪힐 뻔해서 다리가 멈췄다.

(어라?)

 오른쪽도 왼쪽도 모두 키드의 손이 창가에 놓여 있었다. 키드와 창문 사이에는 나. 마치 그 사이에 갇힌 것 같았다.

(………)

 팔 사이를 빠져 나가려는데 키드의 팔이 내려왔다.

(………응?)

 팔 사이를 빠져나가려고 몸을 굽혔더니 키드의 팔이 내려왔다.

(………………)

 팔 사이를 빠져나가려고 웅크렸더니 키드의 팔이 내려왔다.

(……………)

 팔 사이를 일어서서 넘어가려는데 키드의 팔이 올라왔다.

(……………)

 키드를 올려다 봤다. 키드는 히죽히죽 웃으며 날 내려다 보고 있었다.

「우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엥!!」

 나는 돌아서서 커튼과 창문을 열고 온 힘을 다해 울부짖었다.

「이 오빠! 로리콘이에요! 누가 도와줘요오오오!!!」
「예끼, 소리지르면 이웃집에 민폐잖아? 나쁜 아이네」

 키드가 웃으면서 창문을 닫기 위해 팔을 뻗었다.

(지금이다!)

 그 틈에 빠져나가려고 뛰어 나갔다.

「어디 가니?」

 손목을 붙잡혔다.

(히익!)

 쭉 잡아당겨 졌다.

「히얏!」
「이럼 못 쓰지」

 나를 자기 가슴으로 끌어당기더니 다시 커튼을 쳤다.

「말했잖아. 더는 이 손 안 놓겠다고」
「이거 놔! 변태! 편집증! 괴한! 경찰 아저씨ーーー!!」
「아무도 안 올걸」

 집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둘만의 시간을 즐기자구」
「너랑은 극구 사양이야!」

 꾸ーー욱 몸을 눌렀다. 키드는 놓아주지 않았다. 활짝 웃으면서 내 허리를 껴안았다.

「사양이라 해놓고 나랑 약혼한 사람은 누굴까?」
「그래! 나야! 근데! 한가지 말해둘게! 한게 아니야! 반강제로 하게 된거야!」
「반강제라니 남이 들으면 오해할라. 합의 하에 약혼자가 됐잖아?」

 나의 고운 뺨을 키드가 손으로 눌렀다.

「흐아!?」

 말캉, 하고 뺨이 붙들렸다. 키드는 방긋대고 있었다.

「그치? 합의했었지?」

 말랑말랑 뺨을 움켜 쥐었다. 키드는 방긋대고 있었다.

「합의한 거 맞지?」

 말랑말랑말랑말랑말랑, 뺨을 움켜 쥐었다. 나는 소리쳤다.

「그마내에ーーー!」

 쭈욱ーーーー뺨이 늘어났다. 키드는 방긋대고 있었다.

「나와 테리는 첫눈에 서로를 좋아하게 됐고 내가 플라워 리스를 선물한 것을 계기로 미래의 결혼을 다짐했다. 그런 거 맞지?」
「아이야! 이햐힉! 히 이햐 햐히혀, 하망 안혀!!」

 아니야! 이 자식! 이 이상 깝치면 가만 안 둬!!

 그러나 키드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아아, 알겠다. 왜 테리가 그렇게나 화가 났는지. 테리 너 질투하는구나. 나랑 친한 귀엽고 예쁜 여자아이들이 많으니까. 아이고, 세상에. 사랑하는 네가 질투하게 하다니. 알았어, 테리. 질투따윈 안 들 만큼 많이 챙겨줄게」
「흐아!」

 키드가 내 뺨에서 손을 떼고 내 엉덩이에 팔을 끼워넣었다.

「영차—」
「히엑!」

 번쩍 위로 들어 올려졌다.

「…………」

 내려갈 수 없었다.

「우에에에에에엥!!」

 나는 울음소리를 냈다.

「안 내려줘! 우에에에에에엥!!」
「자, 테리, 보렴. 너를 바라보고 있는 내가 있어. 자, 눈 마주치고」
「시끄러!! 입만 열면 헛소리만 해대고!! 얼른 내려줘!! 이 망할 것아!!」

 찌릿! 내려다 봤더니 날 빤ーーーーー히 쳐다보고 있는 키드의 얼굴이 시야에 펼쳐졌다.

(윽)

 그 눈동자와 시선이 맞으면 누구나 이렇게 두근거릴 거다.

 가지런한 윤곽. 깊고 순수한 눈. 어둠에 가까운 깊은 곳까지 빨려 들어가 버릴 것만 같은 벽안. 여자아이 같은 흰 피부에 늠름한 눈썹, 높고 반듯한 코. 보고만 있어도 입맞추고 싶어지는 윤기도는 입술. 한 가닥 한 가닥이 가늘고 섬세한 연청색 머리카락 또한 요염해 보였다.

 외모만 보면 완벽. 이 이상가는 인재는 없었다.

(완벽히 취향에 맞는 얼굴. 딱 내 타입의 미남)

 그럴텐데,

(기분 나빠)

 이 미소도, 이 눈동자도, 이 녀석도.

(꼬맹이 주제에 생각을 도무지 못 읽겠어)
(깨름칙하다고)

 키드가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키드를 내려다봤다.
 키드의 눈동자가 날 쳐다봤다.
 내 눈동자가 키드를 쳐다봤다.
 키드의 눈동자가 애달프다는듯 엷어졌다.
 그 눈동자에 홀릴 것 같아서 흠칫 놀랐다.

(제길)

 나는 평정을 되찾았다.

(안돼)
(이건 키드의 계략이야)

 문득 시선을 피하자 키드의 양손이 내려가고 나와 키드의 거리가 더 좁혀졌다.

「안돼. 날 봐야지」

 그런 식으로 속삭인 탓인지 내 가슴이 다시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테리!)

 나는 머릿 속에서 소리를 내질렀다.

(이 개자식, 난 알고 있어! 딱 봐도 뻔해!)
(그 여자들을 상기해봐! 가엾기도 하지! 걔네들은 키드에게 당한 피해자야!)
(난 지지 않아!)

 난 결코 키드를 보지 않아. 눈을 계속 피했다.

「미인은 3일이면 질린다는 속담 몰라? 난 말야, 3분 넘게 네 얼굴을 봐서 그런지 결국 질려버렸어」
「흐음. 질려버렸구나. 그거 섭섭한걸」

 하지만, 그럼에도, 그렇다 하더라도,

「안돼. 딴 데 보지마. 오랜만에 보는 거잖아? 나, 사랑하는 너와 서로 마주보고 싶어」
「그렇게 속삭이면 누구든 빠져들 거라고 생각하고 있지. 미안하지만 나는 아직 어린애야. 서로 뚫어져라 본들 아무렇지도 않은걸」
「그럼 됐지? 나랑 사귀어줘. 나랑 서로 마주 보자. 나는 테리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몸도 마음도 치유되거든」

 그 목소리에 마음은 담겨 있지 않았다.
 마치 교과서를 담담하게 낭독하는 듯한 말.
 힐끗, 다시 한 번 시선을 키드에게 향했다. 위에서 노려봤다.

「……거짓말쟁이」

 키드는 불쾌하게 웃으며 눈을 가늘게 뜨고 내 눈을 계속 쳐다봤다.

「좋네. 그 눈. 테리의 그 더러운 것을 보는 듯한 시선. 싫지 않아.」
「다 알고 있잖아. 맞아. 넌 더러워. 말도 눈도 탁하기 짝이없어. 빨리 이 손 놔. 그리고 순수하고 맑고 아름다운 날 아주 부드럽게 땅에 내려놓지 그래」
「더럽다고? 자, 정말 더러운 건 누구려나?」

 키드가 밑에서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히죽거리기 시작했다.

「있잖아, 그 누더기 드레스는 어디서 났어? 순수하고 맑고 아름다운 너한테는 안 어울려. 아니면 그 나이에 그런 거에 관심이 있어?」
「그런 거라니?」
「귀족은 무조건 하고 싶어하는 일이지. 빈곤자 흉내」
「무슨 뜻이야」

 나는 어이없는 눈으로 키드에게 쳐다봤다.

「말했잖아. 나한텐 꼭 해야만 하는 게 있어. 네 상대하는 시간도 아까우니까 내려달라는 거야. 바보야」
「…응?」

 입꼬리를 내리고 키드가 눈살을 찌푸린다.

「해야만 하는 일? 그게 뭔데?」
「너랑 상관 없잖아」

 이제 대화는 끝. 그야 키드랑은 상관없잖아?

(빨리 내려줬으면 하는데)

 휙 시침을 떼자 키드의 얼굴이 쫓아왔다.

「저기, 뭘 꼭 해야되는 거야?」
「몰라」

 휙 반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키드가 따라붙었다.

「알려줘. 무슨 일인데?」
「몰라」

 휙 반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키드가 쫓아갔다.

「테리. 알려주면 데이트 해줄게」
「몰라」

 홱 반대를 향했다. 키드가 쫓아왔다.

「알았어. 그럼 과자 줄게」
「필요 없어」

 홱 반대를 향했다. 키드가 쫓아왔다.

(아, 지긋지긋해! 끈질겨 죽겠네!!)

 찌릿 노려보자 키드가 입꼬리를 올리고는 불쑥 말했다.

「아, 지긋지긋해. 끈질겨 죽겠네」
「…………」

(응?)

 키드가 싱글거리고 있었다.
 나는 어리둥절해서 눈을 돌렸다.

(뭐야 얘, 기분 나빠)
「뭐야 얘, 기분 나빠」
(내 생각 읽을 수 있는 거야!?)
「내 생각 읽을 수 있는 거야!?」
(히익!)
「히익」
(작작해! 읽지마!)
「작작해. 읽지마」
(너 같은 건 신용 못하겠다고!)
「너 같은 건 신용 못하겠다고」
(이이이이이이이!!)

 무서워! 이 자식 무서워!!

(대체 뭐야, 얘…!?)

「아하하하하하!」

 키드가 깔깔 웃다가 내 얼굴을 보고 또 간들댔다.

「마음을 읽을 수 있는게 아니라 네가 알기 쉬운거야. 왜냐면 다 얼굴에 써있거든」

 나는 얼굴을 만져봤다. 누가 거울 가져와.

「네 기대에 못 미쳐 몹시 미안하지만 테리가 나를 배신하지 않는 한 내가 널 배신하는 일은 없을 거야. 그렇게 약속했잖아?」

 난 약혼자. 키드는 보디가드.

「유감이네요. 이 계약을 맺고 있는 한, 당신은 나를 신용해야만 합니다」

 서로 신용하는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누가 너 따위를)

「누가 너 따위를 신용하겠냐」

(…………)

 나는 시선을 피했다.

「……아무도 그런 말 한적 없는데」
「하고 있어 눈이 말하고 있어. 나, 눈 보는 거 좋아해. 안구는 예쁘지 않니?」
「………」
「테리, 슬슬 자백해 버려. 계속 그런 너덜한 차림으로 있으면 정말 전속 메이드로 삼는다?」

 나는 꽁해져서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너한테 말해봤자 상황은 안 바뀔거야」
「기분은 바뀔거야. 말해봐」
「………흐음」

 결국 말문이 막혀가며 사정을 이야기해 나갔다. 하나부터 열까지. 잘 간결하게 말하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일단 우리 집의 저임금 건. 엄마와의 싸움. 근로기준 조사에 대해 조곤조곤 이야기해 간다.
 키드는 잠자코 있었다. 나를 안은 채 잠자코 이야기를 들었다. 가끔 맞장구를 치고, 후훗 웃고, 다시 조용히 내 말을 듣고 있었다.

 말을 마치자 키드는 흠, 하고 대답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사정은 잘 알겠어. 다만 그렇다고 해도 그 누더기 드레스는 필요 없지 않아?」
「역시 이해 못했네. 알겠어? 난 진심이야. 엄마한테 똑똑히 보여줘야 돼. 사용인들은 노예가 아니란 걸. 저택 일을 해주는 거야. 엄마랑 똑같은 노동자야. 엄마는 스스로 벌어서 돈이 있어. 그 위에서 사람을 고용하고 있어. 그렇다면 일한 만큼 지불하는 것이 순리지」
「아아, 그렇지」
「조금이라도 비슷한 환경에서 노동 처우가 좋은 곳이 있으면 엄마한테 알려주는 거야. 이대로라면 어떻게 될 거 같아? 좋은 조건의 직장을 찾은 불만 많은 하인들이 그쪽으로 죄다 갈아타고 평생 우리를 최악의 주인으로 기억하겠지」

 그리고 재판에서 우릴 몰아세울 거야!! 아아! 공포 때문에 한기가 일어서 후들후들 오한이!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나는 말야, 그만두는 사람들이 진심으로 신세 많이 졌다고 말해줬으면 좋겠어. 최악의 주인집 딸이라니 싫잖아. 끔찍해! 복수당할 거야! 원한 살거야! 아아! 싫어! 싫다고!!」
「싫든 뭐든 방법이 너무 난폭하잖아」
「뭐어!?」

 갑자기 키드가 빙글 도는가 싶더니 슬그머니 돌아서서 의자에 앉았다. 그대로 안고 있던 나를 인형처럼 스스로의 무릎 위에 올려놓고 등뒤에서 나를 끌어았다. 마지막은 내 어깨에 턱을 얹었다. 여기까지가 눈깜짝할 새에 벌어진 일.

(전혀, 저항할 수 없었…다고…!?)

「음」

 키드가 내 배에 두른 양쪽 손을 잡고 내 어깨에 턱을 얹은 채 신음했다.

「그렇네. 사용인으로서 일하기 편하고 급료가 높은 곳…이라 하면 성 밖에 생각나지 않는군」
「…저런, 너 모르는구나. 거기서 일하는 사람은 그 주변하고 급이 달라」

 나도 귀족인데 거기서 일하는 사람은 별로 마주친 적이 없었다. 일반인 키드라면 더욱 모를 것이다. 잘 모르는 분야에 무지한 건 어쩔 수 없으리라.

「됐어. 난 착하니까 방금 건 못 들은 걸로 해줄게. 성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랑 성 아랫마을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비교하다니 정말 바보구나. 너」
「…그렇게 차이는 없을 거 같은데…」
「궁전은 선택받은 사람들이 가는 곳이야. 그와 달리 우리 같은 일반 귀족은 최소한의 매너만 알고 있으면 어떤 사람이든 받아줘. 확실히 거긴 좋은 환경이긴 하지. 근데 지불할 수 있는 걸 안 주는 데는 없어. 보통 블랙 기업이 아니야」

 와우, 하고 키드는 야단맞게 탄성을 질렀다.

「테리, 그 나이에 블랙기업이라는 말도 아니? 대단한걸. 마치 어디서 일해본 적 있다는 말투 같은데」
「……바보 아냐? 나 귀족 아가씨거든. 일하는 것처럼 보이니?」

 1회차 세계에서 죽을 정도로 일했다고 입이 찢어져도 너한테는 말 못 해.

「아니야. 똑똑하다고 말하고 싶었어」

 키득거리는 키드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벌써 이 나이에 노동자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걸 보니까 네가 어른이 되면 그런 사람들을 돕는 회사를 세울지도 모르겠다. 착실하개 화이트 기업을 지향하는 거야」

 후훗 웃으며 나를 껴안은 채로 몸을 흔들다가―――키드의 몸이 우뚝 멈췄다.

「그거다」
「어?」
「그거야. 테리」

 아, 이건, 이 얼굴 본적이 있었다. 키드가 뭔가 번뜩였을 때 짓는 표정이다. 나에게 약혼자 이야기를 꺼냈을 때와 같은, 역겨운 표정.

 키드가 씨익 웃으며 내게 말했다.

「그러니까 테리가 만들면 되잖아」
「…뭐를?」
「회사」

 뭐?

「사장은 테리. 그래도 사장 대신에 회사를 정리할 사람을 내 쪽에서 준비할게. 그래서 부지런하고 근면한 사람은 누구나 고용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드는 거야. 어린애도 일할 수 있어. 전과가 있어도 일할 수 있다. 어떤 사정이 있어도 조건만 충족하면 일할 수 있는 거지. 물론 고연봉에 일하면 누구나 생활이 안정되는 회사」
「…하긴 그런 곳이 있으면 누구나 일하고 싶겠지만 어디서 돈을 버는 건데?」
「바로 그거야. 무슨 회사로 할래? 의료, 복지, 요식업, 미용, 패션, 금융, 건축. 접근성이 좋은 건 요식업 아닐까? 다들 편한 마음으로 면접 보러 와줄거야」
「으음」

(회사라…)

 내가 회사를 차린다 하면, 그렇지.
 나는 상상력과 망상력과 이상력으로 이미지를 부풀렸다.

「귀여운 게 좋아」
「응응」
「예쁜 게 좋아」
「응응」
「멋지고 품위있는 게 좋아」
「응응」
「커다란 건물에서 모두가 웃으며 일하는 거야」
「응응」
「누구나 일할 수 있어. 어이든 범죄자든 근면성실하다면」
「응응」
「채용되면 생활고를 겪는 일은 별로 없어」
「응응」

 뭐가 좋으랴나. 패션? 쥬얼리 숍? 아이스크림 숍? 레스토랑? 복고풍 찻집? 반드시 살려내는 병원? 미용실? 에스테틱? 은행? 건축회사?

(그거랑, 저거랑, 이거랑, 으음)

 생각해보니까 의외로 회사 종류는 다양하구나. 하기사 성 아랫마을이고 여러 회사가 있고 여러 가게도 있어. 그런데도 일자리가 없는 하층민은 많아. 노숙자도 많아. 도시인데도.

(왜지?)

 그 답은 사리아가 말했었다.


 ―――비교적 좋은 일자리 구하기가 너무 힘에 부쳐요.
 ―――물론 관공서에 가면 소개창구도 있지만 대개 조건에 안맞고 시간이 한없이 걸리거든요. 반년을 기다리는 경우도 흔히 보이고요.
 ―――그래서 연줄로 찾는다든가, 거리 게시판에 붙은 일자리 모집 광고를 본다든가 그렇게 하나하나 더듬어 찾을 수 밖에 없답니다.
 ―――그게 어쨌든 몹시 힘드니까 다들 해고되지 않으려고 열심히 일하고 있어요.


「……………」

 이렇게 가게가 널려있는데 게시판에만 일자리 모집 광고가 있었다. 동네 관공서에 가서 소개를 받아도 시간이 걸리는데 비교적 조건에 맞지 않는다.

(어라)

 이런 것도 어떨까.

「테리, 또 하고 싶은 건?」
「정보」
「응?」
「키드」

 나는 내 머리에 있는 생각을 말로 꺼내봤다.

「이 마을은 가게도 회사도 많은데 일자리를 못 구하는 사람도 존재한다는 거잖아? 그러니까 그...정보를 제공하면 좀 더 자신의 조건에 맞는 일을 하는 사람이 생길 거라고…생각 안 해?」

 키드가 고개를 갸웃했다.

「뭐어? 흥신소라도 하고 싶니?」
「음…… ……뭐라고 할까…, …그게…、………일자리를 소개하는 회사...같은?」

 키드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관공서 업무인 소개 창구를 회사로서 운영한다는 거야?」
「응」

 예컨대 빵집이 일손이 부족하다고 하자. 일이 없는 사람을 무료로 빵집에 소개한다. 그래서 빵집 측에서 마음에 들어하면 고용계약을 맺고 일할 수 있다. 하지만 사정이 있어 계약을 맺지 못할 경우 또 다른 직장을 소개한다.

「오래 안 걸려. 그 날 안에 정해져」
「일해보고 무리일 거 같으면 회사 사람에게 연락해서 또 다른 일자리를 신속하게 소개받도록 하는 거야」
「정규직 희망인지 아르바이트 희망인지도 선택할 수 있어」
「반년 희망인지 단기간 희망인지도 고를 수 있어」
「아무튼 그 회사에서는 일을 소개해주고 손님들이 일을 고르게 하는 거야」

 그래서 많은 분류로 일도 나누어져 있어.

「본인이 제일 잘하는 걸 물어보고 일을 소개하는 거야. 적성에 맞는 걸 해야 일하기 쉽지.」
「금액은?」
「관공서에서는?」
「무료」
「그럼 이쪽도 무료로 하지」
「무료로 신속하게 업무를 소개하는 회사」

 테리, 중요한 거 하나

「어디서 돈을 벌어들일려고? 관공서는 세금이 있지만」
「…큭……」

 정곡을 찔려 벌레를 씹은 듯한 신음이 새어나왔다. 하지만 키드의 표정은 어딘가 밝았다.

「근데 왠지 재밌을 것 같아.그런 회사 여지껏 들어본 적 없는걸」

 키드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테리, 진심으로 진지하고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괜찮아 내가 붙어 있으면 다 잘될거야」

 히죽 웃는 키드와 그대로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고 이야기를 진행했다.
 이야기는 생각 이상으로 진행돼 마치 오페라를 본 뒤 무대 소감을 친구들끼리 얘기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중요한 얘기. 나는 메모를 하고 싶어서 종이와 펜을 달라고 하자 키드가 고개를 저었다.

「굳이 안 그래도 돼. 내가 다 기억해둘게」

 그러고는 나를 끌어안은 채 놓아주지 않았다. 이야기는 다시 속행.

(…엉덩이 뻐근해…)

 풀려난 것은 두 시간 뒤였다.


갑자기 출근하게 돼서 업로드가 늦어짐…죄송합니다
전에 글 올린대로 1주 1편 업뎃 예정입니다